선조 임금 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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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임금 어진
  • 송영기 기자
  • 승인 2019.01.0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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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조선 제14대 선조 임금 어진-傳)

 

선조임금 어진(宣祖 御眞 傳) -추정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전쟁을 치르고 승리로 이끈 조선 제14대 선조대왕의 도사(圖寫)어진(御眞)이 용케 아직까지 남아 전(傳)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푸른사상사에서 발간된 송영기 시조집 "중천 높이 걸린 저 달"의 목록 제7부 문화와 역사의 향기 편 '선조대왕의 목릉'에 주(註)를 달고 선조임금 어진(傳)이 게재됐다(149쪽)

 

반우향(半右向)으로 호피가 깔린 이동좌식 교의(交椅)에 앉아 왼손은 팔걸이를 잡고 오른손은홀(혹은 부채)을 팔걸이에 세운채 붉은색 차양밑의 갓끈달린 갓모자를 쓰고 있는데,화려한 운보문(雲寶紋)녹포단령 안에는 붉은 용포를 껴입었고,흉배의 용문과 풍만한 얼굴의 기품은 사대부의 그것과는 또다른 고귀한 신분의 풍모로써 앞을 응시하는 맑은눈에는 여유있는 만기친람의 기품이 넘쳐 흐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임진왜란시 의주로 몽진한 선조가 상황이 급박하여 세자 광해군과 분조

(分朝)하여 후일을 기약하며 서로 달리 갈때, 맏아들 임해군에게 본 어진을 주었는 바,임해군은

곧 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그래서 임해군을 배종하던 본도도순찰사 윤탁연(尹卓然,1538-1594)에게 이 어진을 잘 보관토록 맡기시어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라 한다.

조선명인전에 의하면 윤탁연은 호가 중호(衆湖)도승지 한성판윤과 형조호조판서를 지내고,광국 훈삼등으로 칠원군(漆原君)에 봉해진 인물로서,의병을 모집하고 북변체류 3년만에 누적된 피로로 병을 얻어 향년 57세에 졸하니,헌민(憲敏)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조선시대 왕의 어진은 창덕궁 신선원전에 모두 48점이 있었는데,6.25 전쟁때 부산 용두산부근에 옮겨져 보관중 1954년 화재로 거의 전부 소실되었고,현재는 태조 이성계와 영조(51세 때) 철종 고종 순종의 어진5첩,영조의 21세 연잉군 왕세재 시절 초상화만 있다.

그리고 잃어버렸다가 최근에 나타난 어진화사 이당 김은호가 모사(模寫)한 세조의 밑그림이 남아 있어 현재 경복궁 국립고궁 박물관 궁중서화실에서 별도 전시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중천 높이 걸린 저 달' 시조집 149쪽 - 푸른사상사 간행)

 

 

(사진출처 : 중천 높이 걸린 저달 ㅡ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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