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황악산 직지사 (黃岳山 直指寺)
황악산 깊은 산속 直指川 내리는 물,
萬歲橋 건너가며 찌든마음 털어내고,
자하문 금강문 지나 四天王門 앞에섰네.
黃龍이 똬리틀고 나무아래 서려있는,
기이한 꿈 깨어나 주지스님 와서보자,
한 소년 넓은바위에 졸고있어 걷우시니,
法器를 갈고닦아 이 도량서 道業쌓고,
壬亂時 석장(錫杖)짚고 큰 칼을 함께 잡아,
나라에 큰 功 세우니 泗溟 영탱 모셔졌네*.
蛇頭血 北峰아래 대웅전 안 수미단 위,
닫집은 화려하고 三佛탱화 고졸한데,
맑아서 俗氣가 없는 三尊主佛 광채나네.
응진전 石臺 밑엔 파초잎새 무성하고,
비로전 千佛사이 童子像이 서 있는 데*,
참배 때 첫눈에 보면 得男한다 하더라.
都雲(도운) 宋永起/시조시인,서울
(註) * 사명 영탱 :
경남 밀양출생인 사명대사(속명 任應奎, 자 離幻, 호 松雲)가
어려서 연이어 부모 잃고 시름을 달래려 16세때 직지사에
다다라 지친 나머지 천왕문 앞의 너럭바위에 앉아 졸고 있었다.
마침 주지스님인 신묵대사가 그 때 참선하다 졸았는 데,사천왕문
앞 은행나무에 황룡이 승천하려는 꿈을 꾸고 이상하게 여겨 급히
내려와 보니,웬 지친 소년이 곤히 잠들어 있어 제자로 삼아 출가
하게 되니,그 소년 곧 사명대사(泗溟 大師)로,18세에 승과에 장원급제,
30세에 직지사 주지, 32세 때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나 사양하고,묘향산
보현사의 휴정(休靜) 西山大師를 찿아가 제자되어, 禪을 닦았다.
훗날 승병장이 되어 임진왜란에 승군을 이끌고 호국선사로 활약,
나라에 큰 功을 세우셨다.
그 인연이 있는 金泉 直指寺의 泗溟閣 안에 영탱이 모셔져 있어,스님께
참배하니 아름답다.
* 귀향 (歸鄕) - 사명대사 의 詩
(소년시절에 재상 盧守愼에게 노자, 장자, 열자와 詩를 배웠다 함)
열다섯에 집을 나서 서른되어 돌아오니,
긴 시냇물은 의구하게 서쪽에서 흘러오네.
감나무 다리 동쪽언덕에 무성한 버들은,
절반이나 산승이 떠난후에 심은 것 이로다.
* 동자상 :
청기와 지붕의 비로전 (毘盧殿) 법당위 천개의 작은 흰 천불상 사이에
발가벗은 어린 서 있는 데, 마당이나 법당문 안으로 들어 참배할 때
첫눈에 동자가 보이면 아들(得男)을 낳는다는 俗說이 있다.
(* 참고문헌 : 송기동의 신라불교의 성지, 직지사)
* 直指寺는 성주산문 (충남 보령)의 무염대사 (신라 왕자)가 충북 황간의
深妙寺에 주석할 때 세운절로 심묘사에 부속된 절이었다는 설(최완수)이 있음.
(사진촬영 : 송영기 기자) |